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
난 어렸을 때 내 몸이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들어갔던 태권도장. 도복을 나누어 주고 앞으로 그것을 입으라는데, 난 도복을 입은 내 몸이 그렇게 싫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마치 항아리 같이 양쪽 뼈가 볼록하게 튀어나와서, 뼈를 자를 수 있는 톱이 있다면 슥삭슥삭 잘라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분명 같은 크기의 의자에 앉았는데도, 키도 작으면서 나만 양옆으로 튀어나오는 엉덩이와 허벅지도 너무 싫었고, 똑같은 학교 체육복인데 나에겐 임산복 같아 보이게 했던 상체도 너무 싫었다. 박스티가 유행했던 중학시절에 따라 샀지만 둔하게 보이는 내 모습에 자괴감에 빠졌었고, 스키니진이 한창 유행했던 고등시절엔 허벅지에 맞는 바지를 살 수가 없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매일 하며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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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몸이 너무 싫었다. 허리가 잡히지 않는 통원피스를 입어도 예쁘게 잘 어울리는 친구들 몸만 그저 부러워하며 살았다. 그랬다, 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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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난 똑같았다. 내 몸을 숨기고 숨기려고 큰 옷들을 입었고, 옷이 커질수록 내 자신감은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옷을 갈아입고 있던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그런 말을 했다. “너 몸 되게 예쁘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내 몸을 예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밤 잠에 들기 전, 난 나를 찾기로 했다. 유행하는 옷들만 좇다가는 진짜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인정하고,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단점이었던 부분들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재수 생활 9개월 동안 접었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난 내 몸에 딱 맞는 옷들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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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살았으면서, 내 몸을 사랑한 지는 5년밖에 안 된다. 그때의 충격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난 내 몸을 숨기는 데에 바빴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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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다르게 태어난다.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체형이 존재는 하나,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수 있으며, 하체가 상체에 비해 짧을 수도 있다. 어깨가 상당히 좁을 수도 있고, 골반이 일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답은 아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기에, 몸에는 정답이 없다. 내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것. 태도이자 행동인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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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인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내 몸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내 몸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해주지 못 한다. 내 몸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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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든 같지 않든, 두껍든 얇든, 길든 짧든, 모든 몸은 예쁜 것이었다. 이 말이, 이 글이, 누군가에겐 충격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21살 강혜연이 들었던 그때의 그 말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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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혹시 오해하실 분이 계실까 염려되어 몇 자 추가합니다. 제가 무언가를 이룬 거장이라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전 현재진행형인 애송이일 뿐이고,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한참이 남았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뿐이지 자신감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자신감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아직 자신감을 느끼는 단계에까지 가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태껏 자괴감에 빠져 있는 분들을 만날 때 마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이 자괴감으로부터 나올 수 있게 내가 손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인해 제 과거를 처음으로 꺼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구성은 ‘예시(저 강혜연이 과거에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 + ‘글의 주제와 목적’ 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예시”가 아닌 “주제”에 초점을 맞춰주셨으면 합니다. 주제는 “더이상 자괴감에 빠져 있지 말고, 나 자신을 사랑하자”입니다. “나처럼 몸을 만들어라”가 아니고요(그리고 제가 뭐라고 이걸 주제로 삼겠습니까. 제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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